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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레/무용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이미 날이 많이 지났지만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기록해둔다)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13.2.26)


안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음악; 세르게이 세르기비치 프로코피예프


화려한 형형색색의 무대, 탄성을 자아내는 절도있는 군무라는 발레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 백색의 칸막이 몇 개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을 뿐인 무대장치는 마치 추상화같다. 무용수의 의상은 장식없는 무채색 계열. 이 작품을 처음 본 작년, 현대발레라는 장르에 큰 위화감을 느끼고 답답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올해 다시 같은 무대를 대하는 마음은 기대반, 걱정반. 그러나 1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찾아온 작품은 이번엔 차분하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장식을 모두 걷어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우아했던 작품.    

긴 이야기의 흐름 사이사이에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줄거리와 무관하게 등장하는 군무, 디베르티스망은 발레를 보는 즐거움의 하나이기도 하다. 노 연극 중간에 삽입되는 교겐같은 것이라고 할지. 주인공들이 나오는 장면보다 디베르티스망이 좋다는 이가 있을 정도이니 그쯤이면 주객전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마이요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런 잔재미를 주지 않는다. 이야기의 전개, 인물의 내면 묘사에 집중한다. 원전에서 새로운 것을 더해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 핵심이 남을 때까지 있던 것을 하나 둘 빼가는 것이 변화를 시도하는 방향이란 사실이 어렴풋 느껴졌다. 그 극단은 어디까지일까. 훗날 춤만 보아서는 저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인지 알 수 없을 정도까지 추상을 밀어붙이게 되려나. 

발레 하면 바로 떠오르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같은 대표작에 대해선 아직 모험적인 개작 시도가 이루어진 것을 못 보았다. 클래식예술에서 왠지 아쉬운 것이 고전의 레퍼토리를 재연하는 데에만 충실한 듯한 보수성이다. 한 해에도 새로운 뮤지컬이 몇 편씩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발레, 오페라의 신작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일이백년 전의 원전을 충실히 재연하는 안전한 영역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물론 예컨데 백조의 호수를 완전히 새로 개작하여 무대에 올린다면 배신감을 느낀 관객들에게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마저 처음엔 밀어냈을 정도이니. 그러나 호화로운 무대에서 펼쳐지는 맥밀란 버전 롬앤줄은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것 같을 정도로 취향이 조금 변한 듯하다. 이제 두 버전의 롬앤줄 모두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낯선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된 관객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