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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레/무용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추위였다지만 이 때가 되면 연말의 설레는 기분이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지난 달 마린스키가 공연한 백조의 호수를 보고, 이 달 국립발레단에서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기에 볼까 말까 망설이다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들어 토요일 예당으로 발걸음.

12월의 국립발레단이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색다른 안무로 "백조의 호수"를 선보였다. 토요일 공연에서는 한국 발레의 새로운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는 김리회 씨가 오데트(오딜)역을 맡았다. 



오데트공주에게 마법을 건 로트발트가 전형적인 악역이 아닌 지그프리트 왕자의 또다른 내면으로 그려지고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 날 무대에 나타난 로트발트는 마지막 순간 지그프리트가 뜯어낼 날개도 없이 미끈한 팔로 나타났다. 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로트발트가 그림자처럼 왕자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면 그를 극복할 길은 마지막에 왕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뿐이지 않을까 싶어 마지막이 가까워올 수록 비극적 결말을 마음 속으로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오데트공주가 왕자앞을 가로막으며 로트발트를 물리치는 반전이 나오자 절로 탄성이 새나왔다. 슬픈 결말을 그리고 있다가 뜻하지 않은 해피엔딩을 맞이한 기쁨이랄까.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어찌보면 이미 다 아는 줄거리를 보며 매번 몰입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도 한데 그래도 재밌는 걸 어쩌나.


다들 행복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걸 보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미끄러운 길 위에서도 아가씨들이 폴짝폴짝 방금 전 보던 춤을 따라 하는 것이 흥겨웠다. 올해 또 하나의 즐거움이 이렇게 지나갔다. 





추가) 12.11 이은원 발레리나의 무대로 백조의 호수를 한 번 더 보았다. 큰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던 백조였다. 이은원씨의 흑조는 너무 착해보였다는 게 작은 흠이랄까. 이 날도 열렬한 박수 속에 무대인사가 이어졌다. 아직 젊은 무용수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은원씨였다. 이미 활짝 핀 꽃은 감탄을 자아내고, 이제 막 맺힌 꽃망울은 설레임을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