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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발레/무용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국립발레단 

2013.6.30, 예술의 전당

이은원, 이동훈 커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던 1막은 음악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악에 작곡가의 삶을 채색했다고 해야 할까.

터부시되는 동성애 성향을 숨기고 억지로 제자 밀류코바와의 결혼하지만 끝내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어서야 자유로워진 차이코프스키.

남편에게 끝내 사랑받지 못하고 미쳐버린 밀류코바의 절망은 이은원 씨가 표현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랑의 대상은 곁에 있는 밀류코바가 아닌 마음 속에서 지어낸 소년이었다. 죽음 직전에야 상상 속 연인과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던 외로운 영혼의 차이코프스키..

밀류코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형형한 절망의 눈빛. 남편의 인생 속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한 그녀의 인생은 무엇이었나.

무대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이은원씨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차이코프스키 부인의 어두운 심연을 전해주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랑하지만 개인적인 관계는 맺지 않았던 폰 메크 부인은 플락토닉한 사랑이었을까? 실제로 만난 적 없이 서신만 교환했다던 두 사람의 관계도 영원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작품에서는 도박에 빠진 차이코프스키에게 실망한 그녀가 절교하는 것으로 나온다.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에게 품었던 감정은 이성애는 아니었을 것. 우정?

차이코프스키, 밀류코바, 폰 메크 모두 불행해진 채 끝나는 결말. 사회가 가하는 압력을 피해 달아날 곳은 죽음밖에 없었던 한 작곡가는 자신의 내면과 평생 갈등하다가 생의 최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아와 화해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죽음이 문턱에 와 있다. 비록 그의 삶에서 겉돌았지만 부인이었던 밀류코바도, 오랜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도 남아 있지 않은 가운데 맞은 죽음 앞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국립발레단의 신예인 이은원씨와 발레계의 아이돌인 이동훈씨가 주말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었다. 작년 백조의 호수 공연시 백조/흑조를 연기한 이은원씨를 본 후 팬이 되었다. 객관적으로 완벽한 연기는 아니지만 뭔가 약간 아쉬운 듯한 모습때문에 계속 응원하게 된다. 이은원씨 연기에 대한 평은 예쁘기는 하지만 깊은 느낌이 부족하다는 것. 젊고 발랄한 느낌을 좋아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깊어지는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동훈씨는 빼어난 외모로 여성관객에게 인기가 높다. 이번 공연에서도 커튼콜 무대에세 이동훈 씨가 나타나자 뒤에서 비명을 지르는 여성팬이 있을 정도였다. 다만 비운의 작곡가의 슬픈 최후를 보고 난 여운이 여성팬들의 날카로운 환호 소리에 금새 날아가버리는 듯하여 다소 거슬리기는 했다. 그러나 이은원씨의 등장에 마음 속이 환해지던 나로서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휘자를 맞아들이는 그 우아한 동작에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올 뻔했다. (결국 나도 이동훈씨를 반기던 여성팬들과 오십보백보라는 이야기)


오페라나 연주회같은 공연에 비해 발레는 이제 상당히 대중화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출중한 스타무용수들의 노력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발굴해 온 발레단의 노력이 열매를 맺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