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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극/영화

<블랙 스완> 나탈리 포트만 주연



내 안에 있는 두 사람. 백조와 흑조.

나 탈리 포트만 주연, 니나. 때이른 결혼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은 어머니의 기대를 업고 자라난 무용수. 엄격한 부모 밑에 자식이 그러하듯 니나도 반듯하지만 생동하는 감정이 부족하다. '백조의 호수' 주연에 캐스팅되려면 순수한 백조, 욕망에 솔직하고 도발적인 흑조 둘 다를 연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니나의 연기는 흑조 연기에 부적합하다고 감독에게 지적받는다.

감독 토마스. 무용수들의 운명을 쥔 자로서 연약한 여자들을 농락하는 짓인지, 연기자의 감추어진 내면을 헤집기 위한 예술가의 시도인지 모를 도발적인 행동으로 니나의 잠자던 은밀한 욕구를 밖으로 불러낸다. 니나에게 부족한 자연스러움을 갖춘 릴리는 니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며 어머니의 뜻에 한번도 거스른 적 없던 그녀를 광란 속 하룻밤의 일탈로 이끌었다.

몰래 자위를 하다가 슬그머니 들어와 있던 어머니를 보고 소스라칠 정도로 니나의 어머니는 집착이 강하다. 드디어 내면의 숨겨왔던 욕구, 내 안의 흑조를 불러낸 니나. 백조의 호수 공연 주연으로 캐스팅된 그녀는 배역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고 무언가 부족하던 흑조 연기를 흡족하게 소화할 수 있을만큼 자신과 검은 백조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녀를 자유로 이끌어준 친구 릴리는 공연 당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대역으로 선정되지만 니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는 표면상으로는 배역을 빼앗길 수 없다는 일견 예술가로서의 당연한 행동이지만 이제 깨어난 욕정을 투사할 대상인 단장 토마스를 릴리와 공유할 수는 없다는 본능적인 거부감도 작용. 예술혼과 질투가 교묘하게 뒤섞여 구분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이제 제어할 수 없는 흑조가 되고 만다. 

등에 난 이유 모를 상처, 연습 중 갑작스런 부상과 상처출혈. 피는 평소에 보이지 않고 피부가 찢겨질 때에만 밖으로 보여지는 것. 수시로 그녀를 괴롭히는 상처와 출혈 이것은 자신 속 또 다른 내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두려움. 내 몸의 일부임에도 피를 보는 것은 두렵듯이, 백조같이 순수한 자신의 겉모습 속에 남을 증오하고 밀어내려는 흑조가 도사리고 있음은 무서운 일일 것이다.

공연 당일. 불화를 겪던 릴리와 분장실에서 다투다가 그녀를 거울 조각으로 살해하고 만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러 광기에 가까운 몰입으로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지만 마지막 15분을 남기고 백조 분장을 하려고 다시 분장실로 돌아왔을 때, 자기와 싸운 것은 릴리의 환영이었고 릴리를 찔렀던 유리조각은 자신의 배에 스스로 찌를 것이었음을 안다. 극단적인 욕망은 스스로를 해쳤다. 마지막 씬을 위해 무대에 올라 니나는 다시 순결한 백조가 되어 피날레를 마무리한다.

객석에는 어머니가 앉아서 그 스스로는 이루지 못했던 꿈을 딸이 이루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나 이미 니나의 복부는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자신의 엄격한 훈육으로 길러진 딸은 반듯하지만 완벽하지 못한 2류 발레리나일 뿐이었다. 딸이 스스로의 꿈과 함께 어머니의 꿈도 대리만족하기 위해서는 몸에서 피를 흘리는 고통을 치르고라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것.

니나는 혼신의 연기를 한 후 모두 앞에서 완벽한 순간을 만났다고 말한다. 그 순간 니나는 완벽한 발레리나다. 백조와 흑조는 결국 따로따로가 아닌 자기자신의 다른 모습들이었음도 느끼지 않았을까.

음악과 안무만으로도 훌륭한 영화다. 춤추는 장면은 마치 화면이 흘러가듯 유려하고, 음악도 웅장하다. 집이 아니라 상영관에서 봐야 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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