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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극/영화

겨울왕국, 슬픈 진실을 가려주는 해피 엔딩의 마법





애니메이션으로서 유례없는 인기를 모았던 "겨울왕국"도 드디어 이번 주 수요일이면 전국 거의 대부분의 개봉관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얼어 있던 동심(?)을 다시 녹여 준 이 작품과 드디어 이별할 날이 왔다. 이번 수요일인 19일은 우수 절기이기도 하다. 비가 내리며 겨울의 흔적이 씻겨가기 전에 겨우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겨울왕국"은 잘 만든 뮤지컬로 감상할 수도 있다. OST '렛잇고'가 이 작품 흥행의 거의 절반 이상은 설명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애니를 보러 거듭 극장을 찾은 것은 주인공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를 듣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이미 수많은 관람기가 올라와 있다. 각자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대하고 조금씩 다른 감상평을 하고 있는데, 크게 보면 엘사, 안나 자매의 정신적 성장의 스토리이자 사랑에 대한 헌사로 이 애니를 대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관람 회차를 거듭하며 매번 이전에 놓친 대사, 장면의 의미를 새로 발견하는 재미를 누렸지만 작품에 대한 전체적 감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관람이 된 지난 주말 불현듯 스쳐가는 짧은 생각이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였지만, 나만의 감상에 젖어있느라 간과해왔던 것인데, 마무리에 개연성이 부족하고 갑작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상황이 갑자기 반전되며 다시 찾아온 평화 속에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은 관객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었지만, 전개된 사건들이 논리적 계기 없이 무척 급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이야기로서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결말 부분으로 한 번 돌아가보면 아렌델의 왕위를 거의 찬탈하기 직전까지 간 한스왕자, 한스를 꿰뚫어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닫고 진정한 사랑 크리스토프를 찾아나선 안나, 한스의 손에 목숨을 잃을 찰나의 엘사 여왕 이렇게 셋이 등장한다. 이 위기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느닷없이 안나가 언니를 칼로 내리치려는 한스를 막아서다 얼음동상이 되어버리고, 칼이 부서지고, 엘사의 눈물로 안나가 다시 살아난다. 마법과 사랑의 힘이 갑자기 등장하여 현실을 바꾸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만약 이 갑작스런 전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엘사, 안나 자매는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았을 것이다.


믿었던 한스에게 내쳐져 궁전의 추운 방에 갇힌 안나를 구해 준 것은 눈사람 올라프이다. 

한스가 내리치는 칼에 목숨을 잃게 될 엘사를 구한 것은 칼을 받는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린 안나이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아마 현실이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어리석어 한스에게 배신당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안나는 감금된 방에서 외롭게 죽는다. 탈옥한 엘사 여왕은 추격해 온 한스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아렌델의 왕위는 한스가 차지한다.


결국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두 자매가 세상의 거친 세파에 희생당하는 이야기가 숨겨진 진실일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엘사는 왕위에 오른 후 자기 보호 본능으로 거친 행동을 보여 인심을 잃고 이것이 엘사의 얼음 마법으로 비유된다. 엘사, 안나 자매는 왕국에서 축출되어 숨어살게 되고, 왕국은 한스를 비롯한 욕심 가득한 외래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두 자매는 권력을 잃고 왕궁을 떠났지만 후환을 없애려는 욕심쟁이들 손에 차례차례 희생당하고 만다. 

아마도 어린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을 향해 방향을 돌리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눈사람 올라프였을 것이다. 올라프의 도움으로 안나는 감금된 방에서 빠져나와 언니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니는 사랑의 마법으로 겨울을 여름으로 되돌리고 다시 백성의 사랑을 받는 여왕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진실은 잠시 살짝 비추어주기만 하고 해피엔딩으로 덮어 버렸다. 현실 속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그것을 직시할 힘이 생기게 될 먼 훗날로 어린이들에게 숙제를 남겨둔 채로 말이다. 


안나와 엘사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들만 기억하며 겨울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겨울왕국 마지막 관람시에 떠오른 이상과 같은 생각들로 인해 다소 우울해졌다. 이야기는 결국 현실의 반영인데, 이야기만 홀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 그대로는 삼키기 어려운 진실을 입에 넣어주기 위해 비현실적인 마법, 눈사람, 사랑 따위를 등장시킬 줄 알았던 고대의 이야기꾼들은 그러고보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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