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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著



유 시민이라고 하면 국회의원 당선 후 청바지를 입고 의사당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에 대해 여러가지 좋고 나쁜 평이 흘러다니지만 아무튼 이전 참여정부는 국가기관에 그런 리버럴한 옷차림을 하고 들어가는 파격이 가능한 시절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런 그가 이번에 책을 한 권 냈는데 제목이 '후불제 민주주의'.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노제를 지낸 다음날 교보문고에서 보게 되어 바로 사들고 왔다. 정치인들이 내는 책은 대개 '그렇고 그런' 것들이 많아 늘 펄프 낭비라고 여겨왔지만 유시민씨의 책은 드물게 공들여 쓰여진 것이 많음을 알고 있었기에 의심없이 집어들었다.
책표지가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촛불을 붙이는 아이, 그리고 시계. 시간을 가리키는 시침이 흐리다.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저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스스로 쟁취하여 얻어낸 것이 아닌 역사적 산물로서 미국으로부터 저절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누리는데 응당 지불해야할 비용을 모두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 헌법상의 민주주의를 진실로 누리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남은 비용을 모두 치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있는 저 아이는 지금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 6.10민주항쟁 기념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전경이 시민들에게 방패를 휘둘렀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민이 각성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나랑 상관없다고, 귀찮다고 모른 척하는 것도 惡이라면서.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 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p.378-379>

                         똑바로 해,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