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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이야기

돌아온 갈색태비 길고양이의 고난사





2013-2-22(금)

2월 19일 나타난 토라는 힘이 없어보였다. 식사도 하지 않고 가만히 햇볕만 쬐었다. 그 후 이틀간 나타나지 않다가 22일 다시 같은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토라는 입, 눈에서 침을 흘리고 있었고 털도 지저분했다. 며칠 적 찍은 아래 사진보다 몰라보게 나빠진 상태였다.말로만 듣던 범백, 허피스 등이 떠올랐다. 이미 기력이 떨어진 고양이는 박스에 넣을 때도 저항하지 않았다.

수의사 소견은 중독이라고 한다. 이미 여러날 지난 터라 위세척도 불가하고 수액을 주사한 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고. 10분가량 수액주사를 맞는 동안 불안해진 토라가 어웅어웅 울었다. 그 날은 일단, 토라를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경과를 연락받기로 했다






2013-2-25(월)

저녁이 되기 전에 병원에 찾아가 토라를 데려와 살던 곳에 풀어주었다. 입원하던 날보다는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나흘간 수액주사를 맞으며 다량의 소변으로 몸 안의 독소를 내보냈다고 한다. 
몸에서 진한 약품 냄새가 났고, 그동안 식사를 하지 못해 뱃가죽이 쳐져 있었다. 얼른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내 다리에 부비부비만 하기 바빴다. 갑자기 겪은 충격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 불쌍하다. 위급한 상태만 넘겼지 건강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니 진짜 회복으로 가는 길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골상접한 몸에 숨만 붙어있는 듯 상태가 좋지 않다. 정상적인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다가 회복한 것이 아니라 애초 생체조직에 들어가면 안 되는 물질이 체내를 손상시킨 이후라서 여전히 고통스러우리라고 짐작된다. 즉, 외상이 아닌 내상이며 독소배출로 심각한 상황은 면했어도 이미 상한 조직이 재생된 것이 아니다. 과연 회복할 지 마음이 무겁다. 
풀이 죽은 모습을 처음 본 19일에 의사에게 갔다면 경과가 훨씬 좋았을 텐데, 실제로 병원에 간 것은 그로부터 3일이나 늦은 22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증상은 그 사이에 심각하게 진전되었던 것이다.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이제 외견상 활발하게 돌아다니니 나아지는 중이라고 믿고 싶지만 과연 고양이가 자신의 몸상태를 편안하게 느끼는지는 의문이다.




2013-2-27(수)
물과 먹이를 먹는 것을 못 보았다. 물이라도 강제급여를 하려 했으나 매번 거부했다. 병원에서 추가로 할 수 있는 조치는 따로 없다고 한다. 생명을 연장시켜 놓았으니 이제 스스로 회복해야 한다. 변변히 먹는 것도 없는 듯한데 운동능력은 정상으로 보인다.안 보는 데에서 조금이라도 식사를 하고 있나..? 그렇다면 체중은 왜 계속 가벼워지고 있지? 

2013-2-28(목)
아침에 상당히 높은 곳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저녁에 그루밍을 했다. 그리고 아주 약간(두어모금)이지만 물을 마셨다. 

2013-3-1(금)
1. 어둠이 깔릴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 조금이나마 물을 입에 대길래 희망을 가져보았는데... 밖에 마련해 둔 은신처에는 처음부터 마음을 주지 않고 자기가 아는 곳으로 숨는 모양이었다. (19:00)
2  다행히 늦게나마 찾아왔다. 2일 아침 서울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간다고 하길래 창고 안에 들여보내주고, 원하면 나올 수 있게 빗자루로 문틈을 만들어두었다. (22:00)

2013-3-2(토)
치료의 흔적으로 진한 약냄새를 풍겼는데 일주일이 지나며 체취가 돌아오고 있다. 아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못 보았는데 계단도 오르내리고 높은 곳도 다니는 것으로 보아 체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인다. 2일전부터 아주 조금씩이지만 물그릇을 입에 대면 마시는 시늉을 한다. 그 때쯤부터 그루밍도 다시 시작했다. 물을 직접 많이 마시지 않으니 그루밍하며 간접적으로 수분을 섭취하라고 얼굴을 물로 닦아주기도 했다. 
건강했던 예전으로 돌아오는 일은 멀게 느껴진다. 그래도 생각보다 하루하루 잘 버티고 있어 놀랍다. 이대로나마 살아날 수 있다면 앞으로는 불편한 몸으로라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법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2013-3-13(수)
토라가 퇴원한 지 2주가 경과하고 있다. 몸집이 작아지고 기력도 없어 보이는데 외출도 하고 고양이다운 호기심도 여전히 지닌 걸 보면 어디에서 힘이 나는지 의문이다. 늘 따라다니려 하고 곁에 붙어 있으려고 한다. 몸이 약해지면서 마음이 아기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안타깝다. 
함께 뛰어놀고 몸을 맞대며 겨울을 났을 남매고양이들은 토라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토라가 나타나면 밥을 먹다가도 달아난다. 토라에게도 감정이 있으니 아마 많이 씁쓸하겠지. 토라가 병원에 다녀온 후 많은 것이 달라지고 말았지만 지금까지 생존해 있으니 일단 치료는 성공한 것으로 봐야겠다. 
아침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있다. 제법 많이 마신다. 

2013-3-25(월)
토라가 적극적으로 식욕을 보인지 일주일이 되어가며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돌고 줄어들던 체중도 약간 늘어났다.
물만 마시던 고양이가 더 이상은 굶을 수 없었던지 생선 통조림, 물에 불린 사료에 입을 대고 있다. 열흘 전 토라는 안아올리면 배가 등뼈에 붙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심 회복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던 무렵 놀랍게도 뜻밖의 식탐을 나타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모습이다.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 때맞춰 찾아온 봄도 고양이의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다.

           

퇴원 후 한 달이 지나 많이 회복한 모습                                             건강하던 시절의 모습                                                                         장난끼 가득하던 예전의 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