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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극/영화

포화 속으로


시사회 상영시 'Sea of Japan' 자막이 문제가 되어 개봉전부터 이슈가 되었던 영화 '포화 속으로'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티켓을 끊었다

영화 포스터 속에서 얼핏 본 권상우의 절규하는 표정이 몇 주 전부터 잊혀지지 않던 터였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자만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과연 저 포스터 속 구갑조(권상우 분)의 울부짖는 표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영화의 시작부터 보여진 전투장면은 고막을 강타하는 폭탄소리와 함께 신경을 섬찟섬찟 곤두서게 했다. 멀쩡한 사람이 총알 한 두 개만 관통해도 온통 검붉은 액체로 더럽혀지며 철푸덕 고꾸러졌다. 쇠로 만들어진 총과 포, 그것들 앞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연약한 인간의 몸. 몸과 함께 파괴되는 삶. 전투란 그런 것 아니던가.

그러나 충격적인 전투씬이 지나가자 몰입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화 탓이라기보다는 내 탓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유명하다는 영화나 책을 봐도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 까닭이다. 남들이 만들어낸 메시지를 덜컥 내 인생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포항을 사수한 주역들이 학도병이 아니라 대학생 부대 또는 아저씨 부대가 될 수는 없었을까. 나는 그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 살씩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데 그 생각이란 게 주로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한 생각이다. 반면 누군가가 던져 준 한 마디 이야기에 마음이 크게 일렁이는 나이에는 생각도 못 할 일을 할 수 있다.

영화 속 학도병들이 그러한 나이였다. (학도병 중대장 오장범)우리는 군인인가 아닌가!! (학도병70인)군인이다!! 인민군 소장 박무랑이 공격하겠다고 통보한 시각을 코앞에 두고 장범과 학도병들이 죽음의 각오를 다지는 모습은 코끝이 시큰했다. 아무 생각없이 스크린을 소비하던 내가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포항여중 건물을 진지삼아 벌어지는 전투에서 사람은 하나 둘씩 죽어가고 쇠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나는 몇 년 전 엽총에 맞아 죽은 내 고양이가 생각났다. 총을 쏜 사람은 가까운 곳에 있었고 나는 겁쟁이처럼 어둠이 내린 밤에 고양이의 시신을 치웠다. 그 때부터 필자는 총이라는 물건의 속성을 비로소 깨달았다. 철로 만든 총은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고 그것을 잃은 이는 증오하는 쇠로 만들어진 물건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가게 된다. 포스터 속 구갑조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학교 옥상에서 끝까지 싸우던 오장범(T.O.P분)도 구갑조도 그들을 쫒아온 박무랑도 죽는다. 포항에서 인민군의 진격은 11시간 늦추어졌다는 것이 전투의 성과였다. 아까운 죽음들이었다. 수많은 목숨을 바쳐 얻어낸 11시간 속에는 원통함과 억울함이 배어 있다. 

그 시대에 태어나 조국 수호를 강요받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아마 평범한 인생을 살았겠지. 그러나 운명이 그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몰아 더 이상 갈 곳 없는 곳에서 죽었다.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시간이 되니 학도병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느냐고 묻는 것이 불필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저 싸워야 했기 때문에 싸웠고 싸우다가 죽었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억울함은 누군가가 기억해야 한다. 이 영화는 적과 아군, 선과 악, 이념과 또 다른 이념을 대립시키는 어설픈 짓 대신 그 모든 것이 포성 속에서 파괴되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필자 역시 60년전 포항에서 벌어진 참혹한 역사를 간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으로서 차마 한 줄 남기지 않을 수 없어 어설픈 글을 휘갈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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