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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극/영화

된장 / 이요원, 이동욱 주연


마치 한 편의 옛 이야기를 듣는 듯했던 영화.

도주하던 범인의 발길마저 붙잡게 할 정도로 대단한 장맛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찾아 희미한 단서를 하나씩 풀어간다. 좋은 콩과 맑은 물, 매화 꽃잎 부식토로 빚은 항아리, 이 세상에 하나 뿐인 소금. 만약 이것이 된장을 만들어 낸 전부라면 된장의 비밀은 과학에 속하는 지식일 터이다. 된장은 콩과 소금, 물 그리고 발효시킬 그릇이 필요하므로 그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다시 합치면 된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비의 그 된장에는 이상하게도 술 빚는 누룩이 검출되었다. 술 재료가 왜 된장에 들어갔을까. 여기서부터 된장의 비밀은 실험실에서 풀어나가던 과학에서 장혜진과 김현수가 등장하는 이야기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두 남녀가 서로 우연히 만나 엮여 가면서 그들의 삶에 남긴 흔적이 누룩인 것이었다. 특별히 대단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라 누구도 그들의 삶을 기록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무언가를 남기지 않았으나 그들이 빚던 술과 된장에는 혜진과 현수의 만남과 사랑, 이별이 아로새겨져 있다. 
사람의 정신을 빼앗아가는 된장은 콩과 소금, 물, 항아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혜진이 떠난 김현수를 기다리는 동안 흘러간 동안만큼의 시간이 버무려져 만들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 모든 것을 밝혀낸 것은 한 방송국 피디였다. 자신들의 인생사를 자신의 입으로 전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으나 분명 이 세상에 살다간 두 젊은이의 흔적은 소금과 콩밭, 매화꽃, 된장, 누룩이 기억하고 있다가 들을 준비가 된 누군가에게 전해주었다. 
세상의 신비는 그 뿌리를 캐지 않는 이상 영원히 신비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고 호기심을 가지고 작은 실마리를 따라 거꾸로 거슬러가면 거기에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으며 그렇게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못한 사람의 내력이 전설이 되어 살아날 것이다.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만 장혜진의 손길이 닿았던 사물들은 진실만을 말했다. 그러므로 진실은 역사보다는 차라리 전설을 통해 전해지는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사물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에게만 그러하다.

영화 <된장>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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