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다룬 영화 지슬을 보고 왔다. 사건을 대하는 당사자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을 내놓는다. 이 영화를 본 감상임에 국한하여 말하면, 약 60여년 전 제주도의 비극은 인간의 마음 속 "증오"가 빚어낸 참변이라는 느낌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토벌군의 출신은 다양한데 그 중 "빨갱이"사냥에 유독 집착하는 사람은 공산당에 피해를 입고 월남한 이북 출신 청년이다. 다른 군인들은 비록 토벌에 동원되었으나 작전의 당위를 납득하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여 준다. 하지만 "빨갱이"에게 어머니를 잃었다는 평안도 말씨의 그 청년은 주민에 대한 적대 행위에 거리낌이 없다. 그에게 있어 눈에 띄이는 섬 사람은 모두 적군일 따름이다. 토벌기간 중 약 3만의 주민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작전 기간 중 실제로 벌어진 일은, 증오에 사로잡혀 복수할 대상이 필요했던 토벌군 개개인과 그들이 두려워 달아나다 여기저기에서 죽음을 맞는 주민들이 빚어낸 참극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리고 그 결과가 군정의 의도에 부합하였으므로 작전의 성과를 훼손할 수 있을 사건 진상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은 것 아닐까.
오래 전 일본 NHK에서 방영한 사극 "공명의 갈림길"의 한 에피소드가 기억났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배신하고 이에야스쪽으로 전향한 야마우치 카즈토요가 시코쿠의 도사국(現 고치현)을 평정할 때 저항하는 토착민들을 야비한 술책으로 절멸시키기 전에 잠시마나 고민하는 장면이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있어 경험을 전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잔혹한 처사가 어떻게 역사에 남을지를 생각하며 괴로워했고 결국 500년이 지났어도 TV드라마를 보며 시청자 모두가 그의 행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미군정 및 한국내 협력자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이 제주도에 얼마나 있었을까? 절대 숫자로 보면 서울에 반대세력이 가장 많았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지배자들 자신이 머물러야 하는 서울은 희생양으로 쓸 수 없다. 거리가 멀고 국토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어서 고립시키기 쉬운 곳이 시범타로 얻어맞는 법이다. 그런 일이 현대사에서 세 번 일어났다. 제주 4.3은 그 중 가장 피해가 컸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국토의 변경이면서 인구, 경제력에서도 밀리는 제주는 가장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영화 "지슬"은 제주도에 총소리가 터진 지 65년만에야 만들어졌다. 이제 "사건"에서 어느덧 "역사"로 자리를 바꾸어가는 그 때의 이야기이다. 비록 아직도 논란이 있는 사건이지만 이러한 영화가 전국적으로 상영가능해졌다는 것이 증거이다. 1948년 제주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국가건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기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런데도 죽어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 신생 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에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있는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데 억울한 희생자의 시선으로 본 대단한 역사적 사건이란 실은 그저 유혈 낭자한 난장판일 따름이다.
지슬 포스터, 처녀에게 총을 겨누지만 쏘지 못한다
다급한 피난의 증거, 쏟아진 감자 바구니
동굴에 피신한 사람들
방화로 숨진 모친 앞에 오열하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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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도구, 혼백에게 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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