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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극/영화

위대한 개츠비





최근 본 영화 중 리뷰를 남기고 싶은 것이 드물었는데  '위대한 개츠비'는 오랫만에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었다. 원작의 후광, 시각을 압도하는 영상기술이 어우러진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 정신없는 뉴욕을 배경으로 현란한 화면, 요란한 음악으로 정신을 빼놓으며 관객들마저 욕망의 늪으로 끌어들이더니, 그 욕망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파멸하거나 역겨운 실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급기야는 뉴욕의 그 욕망으로 칠해진 화려함에 진저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서게 한다. 


병적일 정도의 긍정주의로 성공을 향해 달려온 개츠비는 모든 것을 얻을 것 같았던 순간에 파멸한다. 개츠비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데이지는 여자가 편하게 살려면 아름답고 귀여운 바보가 되는 게 좋다던 그녀의 말마따나 무책임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 모든 인간군상이 추하게 무너져가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닉 캐러웨이는 나를 포함 관객들의 시선을 영화 속에서 대변하고 있다. 뉴욕의 모습을 동경했었지만 그 도시가 두려워졌다는 캐러웨이. 모든 것을 갖고 싶은 욕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공간, 대도시란 알고 보면 내가 가진 것을 놓치는 순간 모두에게 버림받는 무서운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순간에 사랑을 배신하는 선택을 한 데이지도 그런 두려움 때문에 돈으로 만든 성채 안에 숨어 모든 것을 외면하기로 한 것.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안온함을 버릴 수 없는 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뷰캐넌의 선민의식, 데이지의 안이함을 감싸주던 그 재력도 아마 1920년대 주식대폭락 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을 거라고 그 뒷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욕망과 두려움의 성은 결국 흔적도 남지 않는 것.


모차르트의 생애를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와 오버랩되는 느낌이다.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술에 취한 듯 세상이 즐거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놓고는 모두에게 잊혀진 채 불쌍한 최후를 맞는 천재음악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을 조울증에 빠뜨린다. 개츠비의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았듯 모차르트의 장례식에도 그 잘난 왕족, 귀족들 중 누구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시신을 구덩이에 던지고 삽으로 회를 뿌리는 장면에 레퀴엠이 울려퍼진다. 개츠비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마음 속으로 진혼곡을 연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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