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작곡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국립오페라단 공연으로 관람했다. 홀에 걸린 대형 포스터에 그려진 카르멘의 모습이 뜨거운 불길을 묘사한 듯 작품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다른 색의 사용없이 오직 붉은 색만 써서 그려진 과감한 그림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대 중앙에 조그만 동심원으로 나타난 붉은 조명이 점점 커지더니 한없이 불그스름한 원 안에 우리의 주인공 '카르멘'이 나타나던 장면을 잊지 못하겠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다 타서 사그러질 뿐 도중에 멈추어지지 않는다. 치명적인 출혈은 생명이 거두어진 후에야 그치는 법. 아름다운 주인공이 빨간 동심원 중앙에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순간은 이후 펼쳐질 비극을 암시하는 복선같은 것이었다. 금기같은 것은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카르멘, 불길같은 사랑 앞에서 파멸한 돈 호세 모두 종말을 향한 질주를 도중에 멈출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들이었다. 빨간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춤추고 있는 카르멘을 집어삼키는 듯한 포스터 그림처럼 길들일 수 없는 정념에 무너진 두 사람은 오로지 붉은 빛으로만 비추어 줄 수 있을 따름이다.
카르멘의 호세에 대한 사랑은 한 남자에 대한 순정이 아닌 어디로 오갈 지 모르는 자신의 변덕스런 욕망이었고, 호세의 카르멘에 대한 마음도 한 여인에 대한 헌신이 아닌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정념에 끌려간 결과였다. 눈에 보이는 주인공은 집시여인과 스페인병사였지만 그 둘은 인간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욕정의 희생물로 보였다. 둘의 사랑이 아름답기보다는 위험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호세의 칼 앞에서도 끝내 그가 건내 준 반지를 내던지며 거칠게 일성을 내지르던 카르멘은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비참한 일격을 당한다. 몸을 버티며 손에 움켜쥐고 있던 장미꽃이 그녀가 쓰러지는 순간 허공에 흩날리며 최후를 장식했다. 돌이킬 지점이 있었음에도 뻔히 파멸을 향해 가는 두 사람을 남겨 둔 채 무대가 닫히는 것을 보며 말을 잊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는 반성하지 않는 자를 죽은 자의 혼령이 징벌하지만 끝간 데 없는 정념에 사로잡힌 자는 결국 그 자신의 마음이 곧 지옥일 뿐, 혼령도 사신도 실은 등장할 필요가 없다. 카르멘시타도 호세도 죽음 이후에는 안식을 얻었기를...
출연진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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