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3월16일(토), 대구오페라하우스
화려한 축제 장면, 가벼운 선율은 원래부터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치 연극보듯 줄거리에 집중하며 지켜봤다.
젊은 귀족 알프레도,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 그리고 알프레도의 완고한 아버지 제르몽. 스토리는 간결하다.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데 제르몽은 가문의 평판을 떨어뜨릴 두 사람의 관계를 용인할 수 없다. 그래서 몰래 비올레타를 찾아가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그 다음 중간스토리는 건너뛰고 결국 비올레타는 병이 깊어져 죽게 되고 알프레도는 물론 여인의 착한 마음을 뒤늦게 깨달은 제르몽도 비탄에 젖는다는 내용.
플롯은 라 보엠과 비슷한 느낌도 든다. 여주인공의 죽음이 감동을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몰라도 지금의 시선으로는 진부한 감도 없지 않다.
작품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어쩌면 비올레타를 제외한 모든 이가 그녀의 죽음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문과 영지를 아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제르몽은 비올레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프레도는 젊은 혈기에 그녀와 사랑을 시작하지만 늙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을리 없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맞서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질책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겐 갈등을 해소할 계기가 절실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비올레타에게는 지병이 있었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 주니 살아남은 자들간의 갈등은 저절로 해결된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물러나 준 비올레타는 '착한 여자'로 기억되고. 제르몽의 말대로 그녀는 '아들을 지켜주는 천사'가 되는 것 외엔 다른 길이 허락되지 않았다.
인간 관계 속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경험하거나 지켜본다면 기가 막힐 일에 불과한 사건이 사치스러운 의상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장식하니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라 트라비아타가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예술의 사명인데(일단 그렇다고 치고), 현실 세계는 아름답지 않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국민오페라로 불리우는 것은 아마 그들도 자신들의 사는 세상이 여전히 부조리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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