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 부산에서는 뮤지컬 '베르테르' 공연이 열리고 있을 것이다. 부산 공연이 이 작품의 올해 마지막 무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뮤지컬을 보고 난 소감을 잊혀지기 전에 몇 줄 적고 싶다.
'베르테르'라는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독일 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하여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최근 새로 나온 번역에서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슬픔으로 번역되었던 'leiden'이 단순한 슬픔보다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사랑의 상실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였으니 고뇌라는 단어 선택이 일리 있어 보인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한국적 정서의 멜로드라마로 새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국어 가사, 한국인 배우, 한국적 감성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결과적으로 원작의 독일스러운 느낌을 뭔가 다른 것으로 대체하게 된 것 같다. 원작의 스토리도 무대화를 위해 약간 수정된 흔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괴테 원작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대한 느낌이 아닌, 뮤지컬 '베르테르'에 대한 감상이라는 것을 다시 명확하게 해 둔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뼈대는 여주인공 롯데와 약혼자 알베르트 그리고 베르테르의 관계가 주가 되며, 정원사 카인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가지가 된다. 얼핏 보아 롯데와 알베르트의 관계는 이미 약혼한 사이로 확고하고, 베르테르가 뒤늦게 끼어들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이미 사랑하고 있는 두 남여 사이를 질투한 한 스토커가 견디다 못해 자살한 이야기가 된다.
롯데와 알베르트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인가? 롯데도 베르테르를 사랑하였는가? 이 두 가지가 궁금해진다. 어쩌면 약혼한 두 남녀 사이에 끼어들 자리를 찾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외견상의 신파극 이상의 진실이 숨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이에 대한 단서가 처음 주어지는 장면은 베르테르가 롯데와 알베르트가 결혼한 것을 뒤늦게 알고 찾아간 자리에서 권총 소동을 벌이다 제압당하는 대목이다. 알베르트는 그 소동을 지켜본 집안 일꾼들에게 '동네방네 소문내지 말라'며 입단속을 시킨다. 그리고 베르테르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데 그 분노의 대상이 '자신의 사랑인 롯데에게 연심을 품은'베르테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거리의 광대처럼 모욕한' 베르테르를 향하고 있다. 법관이며 스스로 자비로운 강자임을 자랑스러워하던 그가 베르테르가 벌인 소동으로 인해 그저 한 명의 화가와 롯데라는 여자를 놓고 다투는 남자의 처지로 끌어내려진 것에 자존심 상해하고 있는 것이다. 알베르트가 베르테르를 연적으로 여긴다면 행여 아내의 마음을 빼앗길까 두려워해야 할텐데 그 순간 그는 자신의 구겨진 체면에 화를 내고 있다. 베르테르를 연적이 아닌 무례한 정신나간 자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롯데에 대한 알베르트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롯데는 남편 알베르트를 사랑하였는가? 롯데는 결혼하기 전 알베르트와 교제하던 시절 '하루가 천 년 만 년~'이라며 그가 방문하길 고대하곤 했다. 알베르트는 당당하고 포근한 모습으로 찾아왔고 롯데의 하인들에게도 넉넉하게 선물을 제공하여 두루 마음을 얻었다.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연인의 모습이다.
롯데와 알베르트의 관계는 늘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차고 소란스럽다. 롯데의 행복이 알베르트를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하는지, 알베르트와 서로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데에서 오는지 헛갈린다. 그 이유를 구분하지 않아도 어차피 행복한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이 약혼자를 사랑한다고 믿는 편이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인 줄로만 알았던 베르테르가 사랑을 고백하면서 롯데는 좋든 싫든 진실과 대면해야 했다. 여기에서 롯데는 뒷걸음질친다. '베르테르의 영혼을 구해주세요'라며 신에게 의지하려 하거나 마음을 고백하는 베르테르를 버려두고 남편에게 도망친다. 갑자기 눈 앞에 드러난 삼각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던 롯데가 알베르트가 약혼자 시절 선물해 준 화분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은 결국 남편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베르트와 베르테르 사이에서 베르테르에게 기울었음을 인정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책감, 두 사람의 결혼을 지켜보고 있을 타자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롯데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마지막으로 사랑을 호소하는 베르테르에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찾아와 주세요, 다만 지나치지 않게'라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베르테르는 롯데 한 사람을 보고 있을 때, 롯데는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의식했다. 베르테르를 잡지 않은 롯데는 알베르트와 함께 행복한 부부를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롯데는 자신의 마음이 남편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고, 알베르트도 롯데에 대한 마음이 잘 해야 배려심 이상이 아님을 알고 있다. 떠들썩하다 싶을 정도로 밝게 시작한 무대는 이렇게 두 시간 후 정반대로 침울하게 막을 내린다.
여담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현실이었다면 베르테르는 꼭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어차피 안 될 사이라면 잊어버리거나, 롯데의 제안대로 애매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거나 중 하나를 택했다면? 결국 시간이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 경우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이미 흔하게 넘쳐나는 연애담이 되고 만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게 잊혀진다는 가능성을 막아버림으로써, 한순간에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커 진 고통을 잊기 위해 막다른 길을 강요당하는 설정이 된다. 일종의 문학적 장치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베르테르가 롯데와 이도저도 아닌 관계를 이어갔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랑은 구질구질한 감정으로 누더기가 되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롯데를 두고 뒤돌아선 것이 옳았다고 본다. 다만 권총만은 꺼내들지 않았다면 이후 그를 따라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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