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카를로 / 주세페 베르디 작품
등장인물;
카를로 5세 혼령-
필리포 왕- 강력한 제국의 군주이지만 아들과 왕비의 관계를 의심하며 괴로워하고 주변의 사람들 믿지 못해 고독해함
엘리자베트 왕비- 정략결혼으로 필리포 왕의 비가 됨. 원래는 돈카를로의 약혼녀.
돈카를로- 약혼녀 엘리자베트를 부왕에게 빼앗겨 고통스러워 함
로드리고- 돈카를로의 친구이자 필리포왕이 유일하게 신임하는 사람
에볼리- 돈카를로를 짝사랑하는 공주, 그의 사랑의 대상이 엘리자베트임을 알고 두 사람에게 복수하고자 마음먹음
종교재판관- 교회의 권위로 정적을 제거하고 왕을 압박. 필리포왕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단 한 사람인 로드리고를 제거하고 싶어함
한 여자를 두고 부자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대립, 절대군주의 권력의 허실과 의지할 이를 찾고자 하는 인간적 고독, 세속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교회의 잔인함 등을 그려내고 있다. 필리포, 엘리자베트, 돈카를로, 로드리고는 그들이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 각각 왕, 왕비, 왕자, 귀족으로서 자신의 위치로 인해 선택이 제약되는 마치 행마가 정해진 체스판의 말과 같다. 필리포는 자애롭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엘리자베타는 사랑하는 연인을 아들이라고 불러야 하며, 돈카를로는 왕실 간 정략결혼의 비극 속에서 아버지와 대립하는 위치에 서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다. 무대 플로어에 그려진 체스판 문양은 오페라 속 등장인물들이 그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의 꼭두각시임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이미 짜여진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할수록 정해진 비극을 향해 달려가고 만다.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카를로 5세의 혼령은 "이승에서 받은 상처는 속세에서 위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현실은 이미 정해진 결을 따라 흘러가고 있어 비록 원치 않는 결말을 맞는다 해도 뒤집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엘리자베트와 돈카를로의 마지막 만남에서 두 사람이 왕명으로 체포될 상황에 처하자 카를로 5세의 혼이 나타나 돈카를로를 데려간 것은 답답한 결말에 일말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극적 장치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필리포 왕이 자신의 서재에서 부른 아리아가 마음에 들었다.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고 죽은 후에야 편히 잠들 수 있을 것이라는 탄식에서 잔혹한 겉모습 이면에 연약한 인간이 자리잡고 있음이 엿보인다. 그런 왕에게 군주로서의 강단만을 요구하면서 왕의 단 한 명 진정으로 신뢰하는 로드리고를 처단하라고 강요하는 종교재판관은 군주 주변에 존재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진정으로 권력을 쥐고 있는 숨은 권력자의 요구를 집행하는 국왕은 그들의 청부살인업자에 불과한 것이다. 필리포 왕을 괴롭힌 모든 상황들, 정략결혼부터 아들과의 불화, 의처증 등은 그가 원하건 그렇지 않았건 군주였기에 짊어진 멍에였다. 자신의 손으로 왕비와 아들을 체포해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선대 국왕의 혼령이 나타나 아들을 데려갈 때 그는 악업 하나를 면제받는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추가)
돈카를로로부터 마음을 거절당한 에볼리의 복수는 너무 싱겁게 마무리된 느낌이 든다. 돈카를로와 엘리자베타의 마음을 눈치 챈 그녀가 복수를 다짐하는 1막의 마지막은 섬뜩할 정도였는데 왕비가 결백을 주장하며 왕 앞에서 주저앉자 에볼리도 왕비의 순결을 깨닫고 바로 죄책감을 느껴 사죄한다는 줄거리는 현실성이 떨어졌다.
돈카를로의 석방을 주장하며 봉기한 민중들의 봉기가 왕의 위엄 앞에 금새 풀이 꺾이는 것이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시대상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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