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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극/영화

추억의 마니






지브리 스튜디오의 마지막 작품 '추억의 마니'.

미야자키 감독 은퇴 이후 만들어진 두 번째 애니메이션이자 지브리 역사의 대단원을 장식하게 되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 서구적 이름과 외모를 가진 주인공 등 일본 애니의 전형적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 환타지의 여운을 길게 남기고 있다. 이것이 지브리의 세계였다는 것을 관객이 기억하길 바라듯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다.

 

'나'는 따로 갑자기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있기 이전 오랜 세월에 걸쳐 앞서 살았던 이들의 삶의 흔적의 합이라는 것을 몽환적인 스토리로 보여준다. 내 안에 앞서간 이들의 자취가 남아 있듯이 나 또한 내 뒤에 태어날 이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 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서구적 사고와는 매우 다르고, 끊어지지 않는 연, 업에 대해 말하는 불교적인 색채가 느껴진다. 서구적인 인물 묘사에도 불구 그 안에 담긴 주제는 동양적이다. 역시 일본은 아시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추억의 마니'를 끝으로 지브리의 후속작은 없을 것 같다. 일본이 한 때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었던 문화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정교한 만화영화였다. 제작기법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수제 애니가 퇴장하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컨텐츠가 달라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한 시절의 마감을 대하는 느낌은 다소 섭섭하다. 손그림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닫는 특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