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30분만 되면 부모님이 어김없이 시청하는 연속극. 언젠부턴가 지켜보기가 영 불편해 그 시간에 나가서 산책을 하곤 한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심성도 비틀린데다 그들이 엮어가는 스토리는 날이 갈수록 요지경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보고 화를 내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는 어이가 없어 웃게 된다. 이런 드라마가 지친 하루에 활력이 된다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글쎄 종일 별 감정의 기복없이 지낸 하루를 감정의 격렬한 요동으로 마무리시켜주니 어찌되었든 뇌운동에는 효과가 있을 듯도 하다.
그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원래 특별히 작품성이 있기보다는 부담없이 쉬면서 지켜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번 것은 전혀 마음편히 즐길 수가 없는 내용이다. 인물들의 언행에는 일관성이 없어 다중인격자로 보이고, 상식에 벗어나는 억지스런 짓 탓에 서로간에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내용을 내보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꼭 그렇게 볼 일도 아닌 듯하다. 실제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억지스럽고 고약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사람사는 구석구석 뒤져보면 이 연속극보다 더 막장을 달리는 고부관계, 부부관계 등등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전개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근거없는 고정관념 아닌가. 수많은 이들의 인생 속에 이미 절대 인과관계 선후연결 따위로 설명되지 않는 토악질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시나리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려야 하나. 복장터지는 소리를 앞뒤 엉망진창으로 뒤섞은 대본은 차라리 현실을 각색하지 않았기에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도 재밌다고 하며 멍하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마 그런 사람들은 훨씬 더 희극같고 비극같은 실제 현실을 살아봤기에 연속극 따위는 그냥 웃으며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이야기가 묘사하는 현실 속 부조리를 지적할 감성조차 무뎌져버린 탓이겠지 싶다. 겨우 일일드라마 따위를 보며 흥분하는 나는 아직도 연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나보다.
연속극 속에 보여지는 어설픈 코믹 에피소드 따위는 다 없애버리고, 식상한 신데렐라 스토리도 강조하지 말고 삭막한 인간살이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건조한 미니시리즈로 다시 만든다면 열심히 시청할 뜻도 있다. 다만 하루의 피로를 씻고 싶어서 TV앞에 앉아 있는 그 시간대에는 그냥 재밌게 웃을 수 있는 드라마가 편성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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