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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교통카드할인 = 현금사용할증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카드를 사용하면 100원을 할인해준다. 현금으로 지불할 때 1800원이라면 카드를 찍으면 1700원이란 이야기. 처음 교통카드를 만들어 버스비를 내면서 스스로를 슬기로운 소비자로 여기며 슬쩍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작은 것이라도 이익이 되는 정보는 금새 퍼져나가는 법. 이제 버스를 타기 위해 동전을 찾는 사람이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열이면 열 다 카드로 결제한다. 그러니까 버스를 타는 사람이 거의 다 할인을 받는다는 이야기? 이용자 대부분이 할인을 받게 되자 현금으로 차비를 내는 사람은 100원 더 비싼 할증요금을 내는 셈이 되었다. 작은 요금 할인 혜택으로 카드를 사용하도록 무언의 권장을 한 결과 이제 1700원은 할인요금이 아닌 정상요금이 되고 원래의 1800원은 "말을 듣지 않는"이들에게 적용되는 벌금같은 할증요금이 되었다.

 카드사용내역을 보려고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교통카드 사용내역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 몇 시에 어디에서 버스를 탔는지 전철을 탔는지 몇 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는지까지. 차에 오를 때마다 100원씩을 아끼기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보고하고 다닌 셈이다. 내가 어디서 뭘 하는지알고 싶은 사람은 있을리 없으니 대수롭지 않은 이동정보 좀 흘리고 다닌다고 걱정할 것까지야 없을 듯 하지만.

 어릴 적 미래과학도서 따위를 읽으면 미래사회에서는 현금이 필요없는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등이 나오곤 했는데 그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새 일상생활은 매끄럽게 연이은 후속단계로 이어지고 있었다. 변화는 당근으로 유도되기도 하고 채찍으로 강요되기도 하면서 구석구석 스며들고 있다. 조지 오웰의 작품 1980년에서는 권력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차가운 사회를 묘사했지만 그의 상상과는 달리 눈에 띄는 강요없이 각자 스스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편리하니까, 할인받을 수 있으니까.

사이트에 회원을 가입할 때나 카드결제를 할 때 무심결에 사소한 정보를 흘리고 다니지만 아직은 누군가가 그런 무질서한 데이터를 모아 정보화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공상과학 소설가의 상상처럼 그가 반드시 무서운 국가권력이거나 빅 브라더일리만은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각자 스스로 떨구고 다니는 자신의 삶의 조각들이 한무더기씩 여기저기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돈이 중요한 사회답게 포인트 제공, 할인 혜택 등이 부드러운 채찍 노릇을 하고 있고. 

세상의 동물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것은 날쌘 치타도 하루종일 편안하게 잠을 자는 늘보도 아닌 돌아다녀도 발자국이 생기지 않는 새나 물고기가 아니련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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