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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이야기

2월이 지나면


2월은 겨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미 그 사이사이로 봄이 몰래 파고드는 애매한 달이다. 썰매를 타던 개울얼음은 이미 군데군데 녹아 움푹 패었다. 낮에는 얼음 위로 녹은 물이 흥건하고 밤이 되면 다시 언다. 하얗게 얼어 달빛을 반사하는 개울은 산자락과 마을의 경계가 된다. 해가 짧은 산비탈에는 아직도 한겨울에 내린 눈이 남아 있다. 눈을 밟으며 미끄러운 산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면 어느 새 마을이 숨어버린다. 이곳에는 어느 짐승의 것일까 큼직한 발자국이 나 있다. 낮에는 어딘가에 다 숨어 있는지 전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낯선 발자국은 산을 내려와 개울가에서 끝난다. 꽁꽁 언 겨울을 경계로 한쪽은 동물의 삶터, 반대편은 사람의 공간이다.  

그러나 양쪽을 마음대로 오가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는데, 바로 고양이다. 저녁에 해가 지길 기다렸다가 후다닥 개울을 건너 산으로 뛰어간다. 무얼 하는 것일까. 아마 먹이 사냥을 할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낮에 마주치는 길고양이가 마을 이곳저곳에서 먹이를 찾아 다니는 것은 더러 볼 수 있지만 밤에 산으로 건너간 고양이가 무엇을 하는지는 같이 따라가 볼 수 없으니 그저 궁금할 뿐이다.

밤에 마당에서 바람을 쐬다 보면 어미고양이가 야옹거리는 소리로 새끼들을 부르며 마을에서 산으로, 산에서 마을로 데리고 다니는 걸 본다. 겨울엔 개울이 얼어붙으니 그들이 싫어하는 털이 물에 젖을 염려없이 마음대로 넘나든다. 작년에 태어난 아기고양이에게는 처음 겪는 겨울이다. 지금 어미와 함께 하는 산행은 최초의 야생체험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 한 가운데에서 여름무렵 태어났을 아기고양이들은 겨울에 어미를 따라 산을 오르내리면서 음식쓰레기가 있는 마을 말고 야생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까.

2월은 짧은 달이다. 긴 겨울은 곧 끝나고 봄이 올 것이다. 어미가 새끼고양이들과 정떼기를 할 날도 가까워온다. 해마다 그랬듯이 겨우내 마을을 떠돌면서 자라나는 모습을 간간히 보여주던 아기고양이들이 어느 새 모습을 감출 것이다. 그 때마다 그 고양이들이 어디로 가버렸을까 생각하며 아쉬워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얼어붙은 개울 위를 지나 산에서 마을로 돌아오는 아기고양이들을 보니 오래된 궁금증의 실마리가 열리는 것 같다. 사방에 푸른색이 돌게 될 때 쯤 기억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들은 아마 바로 전 겨울에 어미와 함께 돌아다녔던 산으로 갔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몇 년전에 떠나간 고양이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들도 가끔 먹을 걸 챙겨주던 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느 밤 깊은 산 속으로 영원히 길을 잡은 냥이들에게도 마지막 순간의 미련이 있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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