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하나가 썩어 언제부턴가 벌이 그곳에 집을 짓느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그 앞을 지나면 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목덜미 뒤로 날아든다.
지나다닐 때마다 벌이 성가시다. 화나긴 벌도 마찬가지. 집(?)에 맘대로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는 인간을 침으로 위협하여 쫓아내려 한다. 신경전 끝에 결국 나는 파리채를 집어들고 야무지게 내리치고 만다. 자랑하던 독침은 한 번 사용도 못해보고 몸이 으깨져 바닥에 툭 떨어진다. 벌과 인간의 전쟁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독침으로 사람을 쫓아내려던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화를 불러온 것. 내 앞에 날아다니던 것이 무심하게 노니는 나비였대도 파리채를 휘둘렀을까. 벌은 사람을 겁줄 수 있는 강자, 나비는 아무 힘도 없는 약자. 그러나 사람이 사는 집에 벌과 나비가 있으면 나비는 살지만 벌은 죽는다. 누군가가 다가갈 때 나비도 속으론 언짢을지 모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다. 나비는 그저 소리없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날아갈 뿐이다. 날아다니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벌은 사람이 다가오면 오지 말라고 쏘겠다고 분명히 경고를 하지만 되려 파리채나 슬리퍼 공격을 받아 나동그라질 뿐이다.
죽은 벌 주위를 개미떼가 새까맣게 덮었다. 벌은 아직 숨이 붙어 있다. 비록 벌침에 쏘이기 싫어 녀석을 내리치긴 했지만 자신의 본능대로 했을 뿐 잘못 한 것은 딱히 없는데 저렇게 괴롭게 죽어갈 이유는 없다. 날개를 들어 개울에 던지자 물에 실려 떠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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