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가까운 긴 러닝타임에 내내 노래로 이야기하는 뮤지컬같은 영화는 많은 관객에게 낯설었나보다. 상영 도중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계속 보였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불빛에 종종 눈이 부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긴 영화가 끝나고 엔딩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켜주었다. 배우들의 연습량이 상당했을 쉽지 않은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인정하고 싶은 작품이다.
어린이 세계 명작 동화 "장발장"만 읽어도 줄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뻔히 아는 스토리를 가지고 세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느냐는 것이 재미없다는 혹평의 주된 이유이다.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부른 노래가 음악적으로 훌륭한지 어떤지 감별할 만한 귀는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젊음을 낭비하고 비참한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는 팡틴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 영화 시작 후 처음으로 스크린에 몰입했다. 이러쿵저러쿵 신세한탄을 중얼거리는 장면이었다면 그렇게 심금을 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물들 마음 속의 색과 온도를 전해주는 것이 이 영화의 시도였던 것 같다. 팡틴의 절망, 자베르의 처절한 자기부정, 혁명 전사들의 격정을 그대로 관객이 느끼도록 이 영화는 의도하고 있다. 가사의 운율과 멜로디의 화성은 그 주된 수단이 되고 있다. 소설을 충실히 재연한 영화를 보려면 그에 맞는 전작들이 많이 있다.
장발장의 새출발은 신부의 관용 덕분에 가능하였던가? 이는 레미제라블 도입부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오늘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예의 그 익숙한 장면이 나오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장발장을 잡아온 경찰 앞에서 신부가 그의 무죄를 변명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은촛대까지 준 이유는? 신부의 관용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를 면해도 전과자 신분증을 지닌 장발장은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현실적으로 장발장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신분세탁을 하고 새출발을 하는 데에 필요한 종자돈. 신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장발장이 신분증을 북북 찢어버리고 나는 자유인이라고 외치는데 은식기를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기에 생긴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다. 물론 신부로부터 감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단지 훔친 물건을 팔아 잠시 큰 돈을 만지고는 다시 빈털터리 도망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렵게 되찾은 제 2의 인생을 위협하는 두 번의 고비(가짜 장발장을 구해주고 자신의 신분을 자백한 일, 노년기의 위안이 되어 줄 코제트가 마리우스에게 가는 것을 받아들인 일)에서 모두 이기적인 욕심을 접고 양심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 성당에서 있었던 그 날의 사건 때문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리우스와 동지들의 항거가 끝내 실패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19세기 파리를 실제처럼 재연하는 그래픽 기술에 감탄하면서 총소리가 들리는 현장에서 참극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열렬히 지지하던 시민들, 그러나 정부군을 보자 겁에 질려 혁명군을 외면하는 사람들. 고립된 채 싸우다가 모두 죽음을 맞는 시민군. 다음날 피로 물든 거리를 청소하며 아무 소용없는 애도의 말을 쏟아내는 아낙네들. 19세기도 오늘날과 똑같았던 것이다.
코제트를 마리우스에게 보내주고 혼자 숨어 살던 장발장이 뒤늦게 진실을 알고 다시 찾아온 코제트 부부를 맞이하는 대목은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이다. 어릴 적 어린이 세계명작동화 "장발장"을 읽을 때에도 그 마지막 부분이 왠지 모르게 슬펐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할 나이였지만 장발장의 그 대목은 어쩐지 숙연했다. 영화는 파리의 대로에서 군중이 혁명의 노래를 제창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장발장, 팡틴느, 코제트, 마리우스도 군중에 섞여 감격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던 그 시점에서는 부당한 죄수도,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여인도, 왕정을 타파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젊은이도 더 이상 없게 되었던 것일까. 이미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지 못함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함께 목청 높여 노래부르던 그 순간만큼은 유토피아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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