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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뻔한 개, 고양이의 죽음





2013. 6. 9일자 한겨레 기사


농작물 훼손에 앙심 품고 개 고양이 6마리 독살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내용 그대로이다. 이런 경우 댓글을 보면 사람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 해묵은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가 하는 물음처럼 끝없는 다툼만 일어날 뿐 답은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서로의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전제를 깔고 있는 답변은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 된다. 

생각을 펼치는 전제가 다를 때 그것은 대개 각자의 입장이 차이가 있어서이다. 댓글 중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농촌에서 농사는 생계이지만 개 키우기는 취미, 취미생활이 생계활동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댓글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체로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농촌에서 개, 고양이 키우기는 생산활동과 상관없는 불필요한 일로 비쳐진다. 농업 말고 다른 생산이 없는 곳에서 작물을 훼손하는 일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닭, 오리를 키우는 것은 예외이지만 순전히 개인적 애호로 다른 동물을 키우다가 밭이나 병아리를 건드려 밭주인에게 반려동물이 보복을 당한다 해도 개, 고양이 주인이 잘못했다는 분위기이다. 동물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항변은 밭과 닭, 오리에 생활을 의지하는 농촌에서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반면, 도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양한 생계수단을 가지고 있다(그 생계수단이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데에 충분하다는 뜻은 아니다). 도회지에서 살아갈 때 부딪치는 큰 문제는 외로움인데 개, 고양이는 그런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벗이 되어 준다. 내가 홀로일 때 위안이 되어준 개, 고양이를 (그들이 생각할 때) 겨우 풀 몇 포기 때문에 죽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밭주인이 밭을 지키기 위해 약을 놓아 길고양이를 죽였다는 소식에 분노하고 강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탓에 상이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이슬람 문화에서 돼지고기를 금기시하거나 인도에서 소를 숭상하는 일이 밖에서 보기엔 희한한 일에 불과한 탓에 타자에 의해 희화화되어 왔지만 가까이에서 관찰해보니 그 역시 충분한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현실의 일면일 뿐이었듯, 밭이 먼저냐 길고양이가 먼저냐 논쟁도 이제 서서히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논쟁의 밑바닥에는 결국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의 이해관계가 숨어있었다. 시골에서는 유일한 생산물인 작물을 지켜야 한다는 이해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했고, 도시에서는 인간의 마음 속 공허를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개, 고양이는 자신들에 대한 처우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인간들의 결정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었다. 농사짓는 마을의 길고양이는 (실제로는 별 소용도 없는) 동물보호법이 아니면 목숨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것일까. 도시의 외로운 독신자의 반려동물은 반려인이 애인이나 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 효용이 다하게 되나. 어느 쪽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인간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는 다툼은 각자 서 있는 곳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상대에게 밀어붙이려다 벌어지는 것일 뿐,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동물의 행복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정작 당사자인 동물은 자신의 생명조차 스스로 지킬 수 없다. 그들에게는 애초에 이해하기조차 불가능하게 복잡한 인간 세상 속에 태어났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이 스스로 만든지 않은 동물보호법이 과연 얼마나 동물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점유가능한 공간은 모두 인간이 차지한 마당에 개, 고양이를 비롯한 모든 반려동물, 야생동물까지도 인간의 결정에 앞날이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압도적으로 인간이 주도하고 동물의 설자리가 없는 환경에서 인간의 이익, 동물의 생명 중에 무엇이 먼저냐는 말다툼은 애초에 할 필요도 없다. 백인이 이미 모든 대륙을 휩쓸고 감옥같은 보호구역에 살아남은 인디언을 몰아놓고서 백인의 권익과 원주민의 권리 중 무엇이 우선이냐를 따지는 만큼이나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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